짜잔 홈갤러리
전시장의 하얀 벽과 밝은 조명, 깨끗하 고 조용한 공간은 작품에 집중하도록 하 는 근사한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그 공간 에만 있는 특유의 집중력, 평범과 비범 이 동시에 앉아있는 모습이 좋아요. 그렇 긴 해도 저는 제 그림의 마지막 정박지가 사람 의 일상이 오래 머무르는 공간(집, 사무실, 영업 장 등)이길 개인적으로는 바라고 있습니다. 오 래전부터 어떤 집에 그림이 있고, 그 집에서 지 내는 사람의 시간과 생활적인 모습, 소음, 냄새 등이 더해지면서 그 전체가 커다란 그림이 되는 걸 상상하기도 하고, 그림이 태어나고 자란 장소인 우리집이 생가(生家)가 아닐까 하는 생각 과 동시에 집에서의 전시도 상상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페이퍼 그라운드’의 임나은 대표와 대화를 나누던 중 이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 고, 혼자 상상할 때는 용기가 한참 부족했지만 둘이 되니 모험을 감행할 용기가 생겼습니다. 기획자 입장에서도 작가 입장에서도 이 전시 는 실로 모험이었습니다. 우선 작가의 작업실을 개방하는 오픈 갤러리 정도가 아니라 실제 제가 살고 있는 집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웠고, 시골 골짜기에 있는 이곳에 찾아온 이들이 충분히 만끽하고 완전히 머무르길 원했기에 예약제 운영과 더불어 1시간에 1팀이 관람하는 홈갤러리 프라이빗뷰를 진행했습니다.
아래는 임나은 대표가 쓴 큐레이터 노트 중 일 부인데요, 전시의 여러 면모가 엿보이는 글이라 부분 발췌해 봅니다.
(생략) “<풀지 않는 신비>” 시리즈는 일상생활 곳곳에 숨어있는 크고 작은 감명과 영감의 순간 들을 찾아 나선 작가의 여정을 담은 작업들이 다. 마당에 떨어진 도토리에서 뿌리가 나고 나 무가 되어가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할 때, 반려 견과 하늘의 별을 바다보다 문득 이 넓고 광활 한 우주 속에서 살아가는 자신을 생생히 느낄 때, 바다 수영을 마치고 매일매일이 다른 노을 의 색감을 목격할 때. 작가는 이 신비로운 순간 의 감정들을 수집하듯 그림으로 기록해두었다. 선으로, 무늬로, 감정의 모양을 그려나간 이 드 로잉북은 수년간 일기처럼 쌓여가며 어느덧 열 권 이상이 되었다. 그리고 드로잉 북에 그려진 요소요소들을 발췌하고 이리저리 조합하여 커 다란 캔버스 위에 다시 옮겨 담았다.
하나의 캔버스는 마치 작가의 하루인듯 느껴 진다. 삶을 받치는 뼈대가 되고, 일상이 되어 준 수많은 기억과 감정들. 그중에서 다시 발췌하 고 조합하여 만든 새로운 오늘 하루. 캔버스 안 에는 거대하고 복잡한 세상에 크게 휩쓸리지 않고, 자신이 주체가 되어 선택하고 꾸려나가는 짜잔의 조화로운 하루가 담겨있다.
올 가을, 태안에서 열리는 홈 전시 <풀지 않는 신비>는 이렇게 완성된 22점의 작품을 작가 의 생활공간이자 작업공간인 ‘집’에서 감상할 수 있는 프라이빗 한 전시이다. 일상 속으로 찾아 왔던 신비로운 감정들을 가장 일상적인 공간에 풀어놓은 이 전시는 작품뿐 아니라 작품의 토대가 되는 작가의 생활 공간을 동시에 보고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하다.” (생략)